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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일본에서 일어난 신흥종교
일본 신도(神道) 13개 교파의 하나로 일컫는다. 교조(敎祖)는 나카야마 미키 [中山美伎:1798∼1887]라는 여성으로, 원래 야마토노쿠니[大和國] 야마베군[山邊郡:奈良縣 天理市]의 지주(地主) 나카야마가(家)의 평범한 주부 출신이다. 1838년 그녀가 40세 때 장남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야마부시[山伏:修道僧]를 초빙, 가지(加持)를 행하다가 하늘의 계시를 받고 전도를 개시하였다 한다. 스스로 3천 세계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왔다 하며, 도쿠가와[德川] 말기의 혼탁한 사회정세 속에서 안산(安産)과 치병(治病)의 주술(呪術) 등을 행하여 농민과 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다. 그 후 정부로부터 박해와 압박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고, 1908년에는 교파신도(敎派神道)의 한파로서 독립이 공인되었다.
천리교의 교리는 교조가 직접 지었다고 하는 《미카구라우타》 《오후 데사키》(한국에서는 《親筆錄》) 및 《지도 말씀》에 의하여 주신(主神) 덴리오노미코토[天理王命:한국에서는 天神님]를 받들고 죄악의 근원인 욕심을 제거하여 서로 사랑하며 신에게 노력(勞力)을 바칠 것을 교지(敎旨)로 삼고, 참다운 이상세계 곧, ‘감로대(甘露臺)’를 현세에 건설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887년 교조가 죽자 목수(木手) 출신인 이후리 이조[飯降伊藏]가 역시 신이 들려 대를 잇고, 오사시즈(지도 말씀)를 저술하여 교단을 이끌었다. 1907년 그가 죽자 나카야마가(家)에서 대대로 교주를 전승하여 포교에 전력하는 한편, 1966년에는 신도교파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할 만큼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교회수 1만 7000개소, 신도수 235만 명이 넘는다는 천리교의 본부가 있는 덴리시[天理市]는 일대 종교도시를 이루고 있으며 덴리대학을 비롯한 여러 학교와 도서관 ·체육시설 등 문화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천리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1년 일본인 사와무라[澤村]라는 사람이 마산(馬山)의 김선장(金善長)에게 그 교리를 전한 것이 효시가 된다고 한다. 그 후 일본 자체의 탄압정책 등으로 빛을 보지 못하였고, 8 ·15광복 후에도 반일(反日)사상 등의 영향으로 교세의 확장이 부진하였으나 6 ·25전쟁 후 종교의 자유와 한 ·일국교의 정상화 등에 힘입어 착실하게 교세를 확장, 1993년 현재 전국에는 500개의 교회, 700개의 포교소(布敎所), 신도수 37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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