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성의 모산은 4세기 초 중국 모산파(상청파)의 본거지이다.
모산(茅山)은 강소성(江蘇省) 구용현(句容縣) 동남쪽에 있으며 원래의 이름은 구곡산(句曲山)이었으나 한(漢)나라 때 모영(茅盈), 모고(茅固), 모충(茅衷) 삼형제가 이 산에서 득도하여 삼모진군(三茅君)이라 불리는 신선이 되었기 때문에 모산이라 불린다.
소주의 현묘관은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궁전 터에 세워졌으며, 서진(西晉) 때인 276년 도가 사원을 복구하고 명칭을 진경도원(眞慶道院)이라 불렀다. 이후 당나라 때는 개원궁(開元宮), 송나라 때는 태을궁(太乙宮)과 천경관(天慶觀), 명나라 때는 정총림(正叢林), 청나라 때는 원묘관(圓妙觀) 등으로 개칭되었다가 1911년 다시 현묘관(玄妙觀)으로 바뀌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훼손과 복구를 반복하였는데, 주 건물 삼청전(三淸殿)은 당나라 때 화재로 훼손된 것을 송나라 때 복원한 것이다.
남경에 도착한 일행은 첫 답사지인 모산(茅山)의 도관으로 향했다. 모산은 해발 330m로 상청파(上淸派)의 중심지이다. 흔히 도교의 삼산부록파(三山符籙派)라고 하면, 용호산(龙虎山)의 정일파(正一派), 모산의 상청파, 각조산(阁皂山)의 영보파(靈寶派)를 말한다. 상청파는 『상청경(上淸經)』을 기본경전으로 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며, 중국 최초의 여성도사인 진(晉)나라 위화존(魏華存, 252~334)이 개조이다. 육수정(陸修靜, 406~477)대에 이르면 의례, 복식, 경전이 제정됨으로써 상청파의 교학이 완성된다. 이를 바탕으로 제9대 종사 도홍경(陶弘景, 456~536)이 상청파를 크게 대성시켰다. 특히 도홍경은 모산에서 수도를 했기 때문에 그의 학파는 모산파로 알려졌고, 그로부터 상청파라고하면 흔히 모산파를 일컫는 것으로 되었다.
모산 입구에서 산 정상까지는 도보로 1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모산 도관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하기 위해 차량을 배려해주어 전체 주요 장소를 수월하게 답사할 수 있었다. 산 중턱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노자 상이 있고 산 정상에는 상점과 도교 사원들이 즐비했다. 정상에 위치한 도관에 한 도사가 경면주사로 부적을 그리고 있었는데 모산은 부적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모산 내에는 현재 9개의 도관이 있으며 계속 공사 중에 있고 현대적 감각에 맞는 시설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각 도관은 각각 그 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정상에서 내려와 도착한 다른 도관은 현재 공사 중에 있으며 양생과 관련된 기능을 담당한다. 즉 도교의 양생을 대중적으로 전하기 위한 교육, 체험 및 캠프 등을 중점적으로 하는 곳이다.
모산의 도관은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으로 대부분 파괴되었고, 일제의 침략을 겪게 되면서 현재는 구소만복궁(九霄萬福宮)과 천부만녕궁(天符萬寧宮) 2개만 남아 있다. 도관의 한 관계자는 모산이 태평천국의 난 때 큰 전쟁터가 되다시피 해 도사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1937년 당시 도사가 140여 명이 있었으나 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전부 해산되었다고 했다. 이후 문화대혁명 때 도사추방령이 있어 모산에 거주한 14명의 도사들이 하산했다가 1979년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 모산에는 젊은 인재에 대한 도교 교육에 총력을 기울여 300여 명 정도의 도사가 양성되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모산 전체를 바라보니 속세를 운무(雲霧) 아래에 둔 무릉도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속에도 민중의 소박하고도 거친 욕망이 숨 쉬고 있었다. 도관 안에는 60갑자 신명이 있어 60명의 신들이 해당 간지의 사람들의 수명과 복록을 담당하는데 민중은 이 신들에 의지해 채우기 힘든 현실을 위안 받고 있었다.
다음 우리 일행이 방문한 곳은 중국 강소성 남부에 있는 무석시(无锡市)이다. 인구는 637만명 정도. 이곳은 중국에서 3번째로 큰 담수호인 태호(太湖) 변에 있는 관광도시이다. 원래 무석시는 중국 제일의 주석 산지였는데, 춘추전국시대 주석이 사치품과 명검 제작에 모두 쓰여 고갈되어 버리자 주석이 없다는 뜻의 ‘무석(無錫)’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작은 상하이’로 불리는 오늘날에는 태호에 많은 폐수가 흘러들어가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무석시에는 19개의 도관이 있으며 우리 일행이 방문할 삼산도원(三山道院)은 태호 가운데 떠있는 섬에 있는 도원이다. 이곳은 태호 가운데 떠 있는 섬에 지은 도관이다. 배로 가다보니 많은 인파들이 승선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배에 올라 섬을 향해 가면서 호수에 있는 무릉도원의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다. 폐수로 인해 호수에서 나오는 악취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복을 빌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을 치열한 삶의 욕구가 이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곳 도관의 테마는 ‘양생’이라고 한다. 내단 수련도 하지만 도인(導引)술을 같이 병행한다고 한다. 도인술에 총 18단계가 있는데 직접 시연으로 보여주었다.
모산과 태호 도관 답사를 마치고 일행은 숙소에서 여독을 풀고 다음날 소주(蘇州)로 향했다. 소주는 중국 강소성 남동부 태호 동쪽에 있는 호반도시로 천만 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소주의 첫 답사지는 성황묘였다. 성황묘는 성(城)을 보호하며 성 안에 있는 백성을 지켜주는 성황신을 모신 곳으로 새해가 되면 수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와 새해의 번영과 건강을 기원한다. 특히 제일 먼저 향을 올리기 위해 며칠을 기다린다는 말에 복을 빌고자 하는 이들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 도관은 다른 곳과 달리 일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책임자의 말에 의하면 원래 신을 모시는 곳에서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도관을 찾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향을 피우는데 이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도관을 찾아 염원을 담는 진정한 마음가짐은 자신의 참다운 본성을 회복하고 자신보다 남을 위할 수 있는 마음을 되찾기 위해 향을 피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정말 옳고도 옳은 말이다.
김대현, 「동아인문논단 참관 및 중국 도관 답사기」, ≪대순회보≫ 162 (2014)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