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산은 중국 쓰촨성[四川省] 두장옌[都江堰]에 있는 산.
해발 1,600여m이다. 청두[成都]에서 70㎞ 떨어져 있고 두장옌시[都江堰市] 남서쪽 20㎞거리에 있다. 이전에는 도교 사원 70여 동이 있었는데, 현재는 38동만 남아있다. 칭청산[青城山]은 전산(前山), 후산(后山)의 양대 관광지로 나뉜다. 두 곳 모두 케이블카가 있어 편리하다. 언제나 푸르른 숲을 볼 수 있으며, 봉우리는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 도교 사원 주변에는 안개가 깔려 있다.
청성산은 중국 도교의 발원지 중의 하나로 도교 명산에 속한다. 성도시에서 약 68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도강원시(都江堰市)에서는 15km의 거리에 있다. “청성은 천하의 유곡(靑城天下幽)”이라는 찬사를 받아 온 청성산은 온 산의 임목이 사철 푸르고, 36개의 산봉우리들이 마치 성곽처럼 이어져 있어 푸른 성이라는 의미로 지어졌다. 그리고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가 이 산을 오악장인(五嶽丈人)으로 봉했다고 하여 옛날에는 장인산(丈人山)이라고도 하였다. 산맥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인 노소정은 해발 1,260m이며 8개의 큰 동굴과 72개의 작은 동굴, 108개소의 경관이 있다. 청성산 입구에 잠시 있으니 청성산을 관리하고 있는 청성산 도교협회 회장인 도장(道長)이 직접 마중 나왔다.
쟝밍신(張明心) 도장의 배려로 우리 일행은 청성산의 전산(前山)으로 안내자와 함께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길은 전산과 후산(後山)으로 나뉜다. 우리 일행은 전산으로 가면서 상청궁(上淸宮)을 들러 후산으로 내려가면서 천사동(天師洞)과 건복궁(建福宮)을 들르기로 하였다. 이곳 외의 명소로는 천연도화(天然圖畵), 조양동(朝陽洞), 조사전(祖師殿) 등이 더 있다. 옛날에 후한 시대 장도릉(張道陵)은 이곳에서 치병을 통한 민중의 구제라는 교화방편을 썼다. 도계(道誡)의 실천과 여러 가지 양생적 노력을 권장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선인의 경지에 도달함을 이상으로 제시하였다. 오두미도(五斗米道)라고 하는 이 교단은 당시에 사람들이 무술도 배우고 점차 도교의식을 갖추어지자 청성산에 도교사원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무려 70여 동이나 되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8시에 청양궁을 가기 전에 성도하면 꼭 빼놓지 않고 가봐야 할 곳인 무후사(武侯祠)에 들렀다. 성도는 유비가 황제의 위에 올랐던 장소이자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이 30여 년간 통치했던 촉한의 본거지이다. 남북조시대(420~589)에 만들어졌고, 청대인 1672년에 재건되었다. 면적은 무려 4만 5,400여 평의 넓이이다. 유비의 무덤이 있어 한소열묘(漢昭烈廟)라는 간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의 이름은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충무후(忠武侯)라는 시호를 따서 무후사라 한다. 특히 왕과 신하가 함께 모셔져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더 의미가 있는 곳이다.
무후사를 나와서 삼국 시기부터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는 상업 고장인 금리(錦里)를 구경한 후 11시쯤 도교 사원인 청양궁에 도착하였다. 청양궁은 노자(老子)를 기리는 도교 사당으로 지금은 문화공원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 노자(老子)가 윤희(尹喜)에게 『도덕경(道德經)』을 가르쳤다고 한다. 청양궁은 사천성 서부지역에서 제일 큰 도교사원이며, 건축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당대에는 명칭이 현중관(玄中觀)이었으며 880년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희종(僖宗)이 성도로 피난하던 중 이곳을 행궁(行宮)으로 삼아 장안(長安)으로 돌아간 후 청양궁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청양궁은 대부분 청나라 때 보수 및 재건되었다.
사천대학에서 도교 연구자와 나눈 대화 중에 “학자 중에는 연구만 하는 학자도 있겠지만 진정한 학자라면 수련도 직접 하면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잔스촹 교수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번 학회에서 “일본의 장자 수용”을 발표한 하치야 쿠니오(蜂屋邦夫) 교수도 전진교(全眞敎)에 대해 연구하고자 8년 정도 중국에 머물며 수행에 참여했다고 한다. 나 또한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보다 더 좋은 연구방법은 없다는 학자들의 말에 동감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뿐만 아니라 타 종교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종교에 대한 수행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신상미, 「중국 사천성의 도교 성지를 다녀와서」, ≪대순회보≫ 137 (2012)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