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경성구


연구활동

국내 학술답사

국내 학술답사

정읍 회룡리, 피란동 재실, 농암 답사(2011.3.18)

일정 : 2011. 3. 18
인원 : 박상규, 차선근, 김성수, 이재원
목적 : 정읍 회룡리, 피란동 재실, 농암 답사, 회보 원고 작성을 위한 자료 수집

  • 상세보기
  • Photo
  • 답사기

본문

 

답사 관련 글 :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57: 상제님의 믿음을 방해한 아내의 운명」, 대순회보 121호(2011);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58: 농암에서의 공사와 사명기」, 대순회보 122호(2011)

 

 

상제님께서는 농암을 떠나 동쪽으로 10여 리 정도 떨어진 피노리(避老里) 이화춘(李化春)의 집으로 가셨다. 이 마을은 13년 전에 전명숙이 잡혔던 곳이다. 1894년 겨울에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전명숙은 쫓기다가 순창 접주 오동호(吳東昊)의 안내를 받아 그의 매가(妹家)가 있는 피노리로 숨어들었다. 전명숙은 갑자기 열이 나면서 앓아 눕게 되자 심복인 김경천(金敬天)을 밖으로 내보내 약도 짓고 바깥 사정을 알아보게 했다. 김경천은 원래 장성군 이방이었던 사람으로 전명숙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던 터였다. 그는 약방을 찾다가 문득 전명숙에게 현상금이 천 냥 걸려있다는 방을 보게 되었다. 재물에 눈이 먼 그는 약을 지어다 주고는 그곳을 빠져 나와 관아에 고발하고 동네 불량배 7∼8명을 동원하여 전명숙을 덮쳤다. 전명숙은 담을 뛰어넘어 도피하려다가 다리를 얻어맞고 붙잡혀 서울에 압송되었다. 그는 그 다음 해인 1895년 3월 29일에 교수형에 처해졌으니, 백의한사로 일어나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한 사람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던 만고의 명장은 을 품은 채 세상을 뜨고야 말았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여주시 강천면 가야리 651-2 신축회관 4층 (우편번호 12616)     전화. 031-887-9323(종교문화연구소)     팩스. 031-887-9322
Copyright © 2016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