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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학술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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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객사는 조선시대 순창에 내려온 관리나 사신이 숙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조선 영조 35년(1759)에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여러 건물이 있었으나 순창초등학교의 교실로 이용되면서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본관과 동대청만 남아 있다. 본관에 걸린 궐(闕) 자를 새긴 나무패는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관리들은 이곳에 경의를 표하였다. 또한 이곳은 대한제국 광무 9년(1905) 우리나라가 일본과 을사조약을 체결한 것에 반대하며 임병찬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이 일본군에게 붙잡힌 곳이다.

순창객사, 배산, 숭림사 답사(2010.4.29)

일정 : 2010. 4. 29
인원 : 박상규, 차선근
목적 : 순창객사, 배산, 숭림사 답사, 회보 원고 작성을 위한 자료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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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관련 글 :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44: 진묵의 초혼」, 대순회보 108호(2010);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47: 최익현과 일심」, 대순회보 111호(2010);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48: 신명의 박대가 심한 서교의 앞날」, 대순회보 112호(2010)

 

 

윤 4월 23일,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최익현과 임병찬은 의병을 일으킨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순창에서 체포되었고, 이들은 모두 서울로 압송되었다. 상제님께서는 이 소식을 들으시고, “일심(一心)의 힘이 크니라. 같은 탄알 밑에서 정낙언은 죽고 최면암(최익현)은 살았느니라. 이것은 일심의 힘으로 인함이니라. 일심을 가진 자는 한 손가락을 튕겨도 능히 만 리 밖에 있는 군함을 물리치리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러시면서 상제님께서는 “글 읽던 최익현이 의기를 떨쳐 칼과 창을 쥐었지만, 10월 대마도에서 널에 얹혀 있다가 흔들흔들 고국 산하에 돌아오도다(讀書崔益鉉 義氣束劒戟 十月對馬島 曳曳山河 )”라고 그의 만장(輓章)을 지으셨다. 만장이란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짓는 글이니 상제님께서는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죽을 것임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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