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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 답사(2009.6.16)

일정 : 2009. 6. 16
인원 : 박상규, 차선근, 김성수
목적 : 우암 송시열 유적 관련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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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관련 글 : 「황극 그리고 정역」, 대순회보 106호(2010);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71: 만동묘로 황극신을 옮기는 공사」, 대순회보 135호(2012)

 

 

상제님께서는 황극신이 우리나라로 오게 될 인연은 송시열의 만동묘에서 비롯된다고 밝혀주셨다. 송시열은 명나라의 후계자인 조선이 명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崇禎)을 연호로 사용하고, 만동묘를 지어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내 준 명나라 14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와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崇禎帝)의 신위를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송시열은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군신관계로 파악하고 명이 멸망한 이후에는 조선이 중화문명의 계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송시열이 죽은 뒤, 그의 제자인 권상하(權尙夏)는 1703년에 스승의 유지(遺志)를 이어 충북 괴산에 만동묘를 세우고 명 황실에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만동묘의 위세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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